김양중(상근평가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인데 평가(적정성 평가)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니?’

지난해 5월 제가 심평원에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었던 말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를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제63조에 적정성 평가가 심평원의 업무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나 평가의 의미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적정성 평가의 내용 등이 정책 환경 등 여러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일이 많았다는 하소연도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심사평가원은 적정성 평가를 규정하는 조항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수년 전에 마련했으나 국회에 상정하지도 못한 채 폐기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적정성 평가를 통해 환자들이 받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자 심사평가원은 평가 관련 내용을 규정한 법률 통과에 계속 노력하였으며, 지난해에도 국회의 문을 두드려 올해 봄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등을 거쳐 마침내 지난 5월 29일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성과를 거둬냈습니다. 구체적인 법률 조항을 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심사평가원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 적정성 평가가 앞으로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시행할 수 있는 의무와 권한이 생긴 것이라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통과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우선 적정성 평가는 건강보험법 제47조의4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적정성 평가는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심사평가원이 이를 할 수 있으며, 요양기관의 인력, 시설, 장비, 환자안전 등 요양급여와 관련된 사항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평가 결과는 요양기관에 통보하여야 하며, 평가 결과에 따라 가산 또는 감산을 할 경우에는 이를 가감 대상 요양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통보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심사평가원이 하고 있는 평가 사업이 법 조항에 담긴 셈입니다.

법에 조항이 없었더라도 지금까지 평가 사업을 거의 20년 동안 하여 왔는데,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었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의문점이 생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원래 법률 조항은 추상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얼핏 보면 ‘별 것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럼 법 통과의 의미는 무엇이냐고요?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새로운 법률이나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를 실제로 시행할 때 원칙과 기준을 담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심평원에서는 이 시행령과 규칙을 두고 보건복지부와 논의 중에 있는데요. 이 시행규칙 등이 만들어져 앞으로 의료계나 관련 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받는 절차인 입법예고 등을 거쳐 늦어도 오는 11월 중에 국무회의 등을 통과하면 내년부터는 새로운 시행규칙 등에 따라 평가 업무를 하게 됩니다.

법안 통과가 되었는데, 왜 이제부터가 중요하냐고요? 흔히 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로 답을 드려야겠네요. 요즘 정치 상황을 다루는 뉴스를 보면 상위 법안을 위배하는 하위 시행령이 적지 않다는 지적들이 많은데요. 심지어 하위 시행령 등이 상위 법안을 어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법안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처럼 법안 통과가 끝이 아니고, 시행규칙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하위 규정에 훨씬 더 큰 관심이 필요합니다. 평가를 진행하면서 실제 우리의 업무를 규정하는 내용인 평가의 목적, 계획 수립, 절차, 대상 및 범위는 물론 평가의 기준이나 방법 등이 시행규칙이나 고시 등에 구체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현재의 이 논의 과정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번 가을, 보다 나은 시행규칙이나 고시 등을 통해 평가가 더욱 개선되어 환자들이 받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의료 서비스 평가라는 업무에 종사하는 우리들도 더 큰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2. 8. 14.)

이 코너는 의료 질과 환자안전의 기본 개념과 이론을 소개합니다. ‘101’은 미국 대학에서 👩🏻‍🎓 어떤 분야의 개론이나 입문 과정의 교과목 번호로 흔히 쓰인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래요. 즐독하세요!

안녕하세요! 👋 QSMu101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의료 질 향상의 '주체'에 관하여 생각해 BoA요. 👩‍🎤 지난 달 첫 시간에 우리는 질 향상 개념을 그 용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결석하신 분은 :) 여기를 클릭하세요.

의료 질 향상은 누구의 몫일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 즉 의료와 관계 있는 모든 이해 당사자의 몫이겠죠. 하지만 2% 부족한 것 같습니다. “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란 속담이 있어요. (아리스텔레스가 자신의 저서 『정치학』에 비슷한 얘기를 썼다죠.) 어떤 일이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는, 그 일에 대하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때때로 책임이 있는 쪽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하고요. 😑 의료 질 향상을 위한 각자의 몫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의료 질 향상의 주역입니다. 💪🏼 의료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죠.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질 향상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쉽게 잊는 것 같아요. 병원 같은 의료기관에는 질 향상 부서 설치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의료기관 인증이나 적정성 평가가 영향을 끼쳤죠. 최근에는 예방의학 교과서에도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이라는 제목의 장(chapter)이 따로 생기는 등 의료인 교육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습니다. (그래도 한참 늦었죠 😞)

환자와 보호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 의료의 목적이 환자의 건강 회복에 있다는 점에서 환자의 존재는 의료 질 향상의 궁극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환자는 ① 임상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② 자신의 의료 이용 경험을 말함으로써 질 향상을 촉진합니다. 의료기관의 ③ 질 향상 활동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죠. 건강보험 가입자이자 의료 소비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④ 목소리를 내어 의료인과 의료기관, 건강보험 조직, 정부의 질 향상 노력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또 환자의 ⑤ 자가 관리(self care)는 만성질환 관리(chronic care)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부와 건강보험 조직도 의료 질 향상을 뒷받침합니다. 🤲 질 향상 정책 수립과 실행, 건강보험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와 결과 공개, 질 향상 활동 지원 사업 전개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물론 의료 질의 구성 요소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좁은 의미의 질 향상 정책을 넘어서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대부분의 의료 정책이 질 향상 정책일 수 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와 건강보험 조직의 질 향상 노력의 성격입니다. 우리는 의료인과 의료기관, 환자와 보호자의 질 향상 노력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땅에 묻혀서 주춧돌이 되어라.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너는 뒷받침해라.” 몇 년 전에 알게 된, 한국의 한 의료계 명사가 했다는 말입니다. 공공 기관으로서, 공복으로서 우리 원의 자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도나베디언 선생님은 👴🏻 1988년에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출판한 논문에서 ‘의료 질 평가의 수준(level)’을 언급하면서 오늘의 주제에 관하여 쓴 적이 있습니다. Care by practitioners and other providers, care implemented by patients, and care received by community. 참 대단한 분이죠. 

오늘의 결론: 건강보험 조직은 의료 질 향상 노력을 ‘뒷받침’해야

참고 문헌 Donabedian A. An introduction to quality assurance in health ca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p. 24-6.

이 코너는 우리가 하고 있는 적정성 평가 항목과 관계 있는 연구 문헌을 소개합니다. 문헌의 서지 사항을 제시하고 초록을 번역하며 촌평을 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

지난 5월 하순, 2021년 1~3월 입원 진료에 대하여 마취료를 청구한 387개 병원을 상대로 시행된 마취 적정성 평가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 (세부 시행 계획은 지난 2020년 10월에 공개되었죠.) 이 평가에 사용된 평가 지표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 1인당 월평균 마취 시간 등 7개(구조 3, 과정, 3, 결과 1)이며, 모니터링 지표(구조 3, 과정 3)는 수술 병상 수 대비 마취 전담 간호사 수 비율 등 6개입니다. 

우리 원은 적정성 평가 지표 중 결과 지표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이죠. 여기에 더하여 구조와 과정, 결과 지표 간 균형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결과 지표 자체만으로는 의료 질 향상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은 「마취과 의사 확보 비와 외과 환자 유병·사망 수준의 관련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소개합니다. 🙂

Burns ML, Saager L, Cassidy RB, Mentz G, Mashour GA, Kheterpal S. Association of Anesthesiologist Staffing Ratio With Surgical Patient Morbidity and Mortality. JAMA Surg. 2022 Jul 20. doi: 10.1001/jamasurg.2022.2804. Epub ahead of print. 

중요성 외과 의사의 책임 중첩(overlapping responsibility)이나 환자 대비 간호사 확보 수준이 환자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최근 수행된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 마취과 의사의 책임 중첩과 환자 결과 간 관련성이 연구된 바는 없다.

목적 마취과 의사 확보 수준과 외과 환자의 유병·사망 간의 관련성 고찰

연구 설계와 세팅, 참여자 미국의 대학 및 민간 병원 23군데에서 2010년 1월 1일부터 2017년 10월 31일까지 심장 수술을 제외한 주요 외과적 시술을 받은 환자를 상대로 짝지은 코호트 연구를 수행하였다. 다기관 수술환자관리 결과 그룹(Multicenter Perioperative Outcomes Group)의 전자건강기록 시스템상 주요 수술을 받은 18세 이상 입원 환자 866,453명이 연구 대상이었다. 마취과 의사의 입실 및 퇴실 시각을 이용하여 각 수술에 대하여 마취과 의사의 시간 가중 평균 확보 비를 계산하였다. 성향 점수 짝짓기 법을 적용하여 환자와 수술, 병원 수준의 교란요인을 감안한 균형 표본 그룹을 만들었다. 이들 그룹은 마취과 의사가 수술 1건(그룹 1), 중첩된 수술 1-2건(그룹 1-2), 중첩된 수술 2-3건(그룹 2-3), 중첩된 수술 3-4건(그룹 3-4)을 책임지는 환자 그룹으로 구분되었다. 자료는 2019년 10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분석하였다. 

노출 중첩된 수술 4건까지를 책임지는 마취과 의사가 참여한 주요 외과 수술

주요 결과와 측정 방법 일차 결과는 제9차 및 제10차 개정 국제질병사인분류 퇴원 진단 코드에 따른 30일 사망과 6대 외과 합병증(심장, 호흡, 위장관, 요로, 출혈, 감염 합병증) 발생 유무였다. 

결과 모두 합쳐 성인 환자 578,815명(평균[표준편차] 55.7[16.2]세, 여성 55.1%)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마취과 의사 확보 수준에 따라 수술을 짝짓기한 결과, 그룹 1은 환자 48,555명, 그룹 1-2는 247,057명, 그룹 2-3은 216,193명, 그룹 3-4는 67,010명을 포함하였다. 그룹 1-2 환자와 비교할 때 그룹 2-3 환자는 위험 보정 사망과 유병의 상대 위험도가 4% 증가하였고(5.06% 대 5.25%; 보정 오즈비[AOR], 1.04; 95% 신뢰구간[CI], 1.01-1.08; P = .02) 그룹 2-3 환자는 위험 보정 사망과 유병의 상대 위험도가 14% 증가하였다(5.06% 대 5.75%; AOR, 1.15; 95% CI, 1.09-1.21; P < .001).

결론과 함의 이 연구의 결과는 마취과 의사가 커버하는 중첩된 수술 건수 증가와 외과 환자 유병·사망 증가 간 관련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수술환자관리 팀 모형에서의 마취과 의사 확보 수준의 잠재적 영향을 고려하여 환자 관리 방침을 정해야 한다.

촌평

1. 도나베디언의 지적대로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충분한 자원 보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간호 인력 확보 수준과 병원 사망 위험 간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바 이 연구는 마취과 의사의 중첩 책임에 주목하였다. 
2. 마취과 의사의 중첩 책임 수준 적정화가 필요하다는 연구 시사점으로부터 마취과 의사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비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병원의 간호사 부족을 간호학과 신설이나 입학 정원 증원으로 해결하려 한 그간 인력 정책의 결과를 살펴야 한다. 의료 정책에 과연 ‘낙수(落水) 효과’가 있을까?
3. 의료 질 평가 지표 선정과 활용에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지표 간 균형과 연관성이다. 적정성 평가에서도 환자 중심성과 환자 안전, 결과 지표 개발과 활용뿐 아니라 지표 간 균형과 상호 연관성 점검도 꾸준하게 해야 한다.